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문단 편집) == 사상 == >"각하, 키르히아이스 제독을 숙청하거나 추방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로이엔탈이나 미터마이어와 똑같이 부하 중 하나로 대우해 주십사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조직에 2인자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2인자란 무능하다면 무능한 대로, 유능하다면 유능한대로 조직을 해치기 마련입니다. 1인자에 대한 부하의 충성심에 대용품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 >은하영웅전설 2권 <야망편>, 김완, 이타카(2011), p.306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유능한 자]]지만...... 로엔그람 백작과 친하다는 것을 특권으로 생각하면 곤란하지. 패왕은 사사로운 정과는 무관해야 하는 법.' >---- >은하영웅전설 1권 <여명편>, 김완, 이타카(2011), p.365 오베르슈타인의 사상은 바로 2인자 유해론. 그는 절대적인 1인자와 다수의 3인자로 구성된 조직을 선호했다. 오베르슈타인에 따르면 조직에서 2인자는 무능하면 무능한 대로, 유능하면 유능한 대로 조직에 해를 끼치는 존재라는 것이다.[* 현실의 정치개념에 빗대어본다면 다수의 3인자는 단독 1인자의 권위와 통제 아래 놓일 수 있지만, 하나의 2인자가 탄생하면 그 2인자가 1인자의 권위를 위협할 수 있게 된다는 논리에 가까울 것이다.] 단, 황태자는 왕조의 존속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존재기에 오베르슈타인의 견제 대상이 아니었다. 또한 오베르슈타인이 이상적으로 여기는 군주는 사사로운 정에 휘둘리지 않고, 부하들에게 마음을 닫으며, 신하들에게 공포와 외경의 대상이어야 하고, 극단적으로 감정이 거세된 군주였다. 그야말로 [[한비자]]와 [[마키아벨리]]의 재림인 셈이다. 키르히아이스를 견제한 이유에는 키르히아이스가 자타공인 2인자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라인하르트 쪽으로 대입해보면 복잡해진다. 아얘 라인하르트가 키르히아이스를 확고하게 2인자를 넘어 황태자나 다름없는 후계자로 공인해놓는다면 그러다 라인하르트에게 자식이 생기기라도 하면 꼬이고 반대로 라인하르트가 자식에게 물려주고자 한다면 후계자가 텅 비어버린다. 실제로 키르히아이스 사후 라인하르트 진영은 2인자/후계자가 부재한 상황 속에서 반 제국 세력은 그 점을 이용해 라인하르트를 노리곤 했다.] 라인하르트와 매우 친밀하다는 이유도 있었다. 그래서 맨 처음 견제대상이 된 게 바로 라인하르트의 친우이자 원수부 내 2인자였던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 이는 처음부터 그랬는데 당장에 라인하르트를 처음 보는 자리에서 자신에게만 할 이야기라는 말을 듣고도 라인하르트는 자신에게만 하는 이야기지만 키르히아이스는 자신과도 같다며 그를 물리지 않고 오베르슈타인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려 했지만 오베르슈타인은 각각의 사람은 각각의 임무가 있다며 완고하게 반대했다. 굳이 키르히아이스를 특졍하고 말한건 아니지만 키르히아이스가 2인자에 가까웠던 만큼 틀린 말만은 아니다. 그리고 키르히아이스도 오베르슈타인이 영 못마땅한지 라인하르트와 단 둘이 있을 때 그에게 위험한 자라며 쓰는게 아니라고 말했다...] 오베르슈타인은 [[암릿처 회전]] 이후부터 라인하르트에게 키르히아이스에게 특권을 허용하지 말라고 진언했지만 라인하르트는 듣지 않았고, [[베스터란트 학살사건]] 이후에야 키르히아이스에 대한 여러 특권을 없앴다. 그런데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1차 암살미수사건|이는 거꾸로 키르히아이스를 죽이게 된다]]. 키르히아이스 사후 오베르슈타인은 '제국군의 쌍벽' [[볼프강 미터마이어]]와 [[오스카 폰 로이엔탈]]을 견제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야심을 가진 오스카 폰 로이엔탈을 견제했으나, 라인하르트는 그를 노이에란트 총독으로 임명하여 사실상 2인자로 만들었고, 결국 불행히도 이는 [[노이에란트 전역|반란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로이엔탈이 패망하면서 제국은 자연스롭게 3인자 체제로 복귀하고, 오베르슈타인이 죽을 때까지 이 구조가 지속되었다. [[로엔그람 왕조]]가 창건되고 황제와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의 사이가 가까워지자 외척이 될 수 있는 마린도르프 가문에 대해서도 견제를 넣었다. [[프란츠 폰 마린도르프]] 백작이 황제에게 결혼하라고 진언하자 바로 황후 자리에 딸을 앉힐 거냐고 의심하였다. 그러나 프란츠 폰 마린도르프는 오베르슈타인과 권력다툼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 때문에 딸은 황후감이 안 된다고 손사래를 치거나 딸이 황후가 되자 국무상서에서 은퇴하려고 하는 등 권력에 관심이 없다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오베르슈타인은 라인하르트에게 결혼을 촉구하면서도 고대사에 외척의 발호를 막기 위해 황후의 일족을 모조리 죽인 제왕의 사례를 들어 외척을 경계하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주창한 1인자와 다수의 3인자로 구성된 조직은 [[양 웬리 함대]]였다. 양 웬리라는 1인자 밑에 다수의 3인자들로 구성되었던 것. 카젤느, 쇤코프, 피셔, 아텐보로 같은 3인자들은 모두 자기 분야에만 능했지 누구도 양 웬리를 대체할 수 없었으며, 그나마 실력과 경력 면에서 양 웬리를 대체할 수 있었던 메르카츠는 망명자 출신이라서 함부로 나설 처지가 되지 못했다. 다만 결과적으로 1인자와 다수의 3인자 체제의 한계 또한 양 함대를 통해 보여주었는데 양 함대의 1인자인 양 웬리가 죽자 다수의 3인자들은 새로운 체제를 짜는데 애를 먹었고 양 웬리의 아내인 프레데리카를 정부수반으로 양 웬리의 양자인 율리안 민츠를 군사령관으로 세워 이 문제를 수습했으나 이 조치에 모든 장병들이 납득한 것은 아니라서 다수의 이탈자를 낳았다. 라인하르트 역시도 2인자 없는 체제라는 점으로 인해 버밀리온 회전에서 죽을뻔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